서울의 밤, 6시간의 긴박했던 기록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선포된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국회에 의해 해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계엄령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의 전개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긴급 담화와 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사전 예고 없이 대국민 담화를 열었습니다. 그는 “야당의 탄핵 시도로 인해 행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2. 국회의 출입 봉쇄
10시 50분, 국회의 모든 출입구가 폐쇄되었으며, 의원들과 보좌진의 출입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3. 계엄사령부 발족과 포고령 발령
11시 25분, 박안수 육군 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계엄사령부는 곧바로 강경 대응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11시 30분에는 포고령 제1호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군사적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11시 50분에는 군용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며 군의 진입 시도가 있었습니다.
4. 야당의 조직적 대응
12월 4일 자정을 넘어서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전 당원에게 국회로 집결할 것을 요청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연한 태도로 헌법적 절차를 준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5. 긴박한 충돌
새벽 12시 39분, 서울경찰청은 ‘을호 비상’을 발령하고 계엄군이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12시 45분, 계엄군은 국회 본회의장에 도달했으나 15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강하게 저항하며 대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6.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
새벽 1시, 국회의 재석 의원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우원식 의장은 계엄령 무효화를 선언하며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공식 통보했습니다.
7. 국제 사회의 반응
오전 1시 31분,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정치적 긴장이 평화적이고 법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또한 이 사안을 주시하며 한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8. 계엄 해제와 여파
새벽 4시 27분,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 결의안을 수용하며 계엄 해제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5시 4분에는 국무회의를 통해 계엄령이 공식적으로 해제되었습니다.
9. 정치적 후폭풍
오전 9시 45분, 대통령실 고위 참모진이 집단 사의를 표명하며 책임을 통감했습니다. 한편,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 인사들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 국민과 국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해제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이번 사건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